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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티나눔방

  • 한경민
  • Mar 26, 2015
  • 1074
 



새찬송가 379장
1 내 갈 길 멀고 밤은 깊은데 빛 되신 주 저 본향집을 향해 가는 길 비추소서 내 가는 길 다 알지 못하나 한걸음씩 늘 인도하소서 2 이전에 방탕하게 지낼 때 교만하여 맘대로 고집하던 이 죄인 사하소서 내 지은 죄 다 기억마시고 주 뜻대로 늘 주장하소서 3 이전에 나를 인도하신 주 장래에도 내 앞에 험산준령 만날 때 도우소서 밤 지나고 저 밝은 아침에 기쁨으로 내 주를 만나리 아멘



마태복음 9:9-17
9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10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11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14 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15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16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1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 묵상을 돕는 질문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따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12-13)
새 포도주와 새 부대는 각각 무엇을 혹은 누구를 가리킬까요? (17)

▩ 단어연구
세리와 죄인들(10) 세리는 자주 죄인이라는 단어와 나란히 병치되는 공인된 죄인이었다. 로마 당국과 일정 금액의 세금 계약을 체결하고는, 백성들에게는 그 이상을 착취하여 이득을 챙기는 것을 업으로 삼았기에 백성들로부터 많은 원성을 샀다.



눈앞에 주님을 두고도 놓친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가 의인인 줄 착각하는 죄인들, 그리고 주님보다 종교적인 계율에 얽매인 사람들입니다. 성경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나를 따르라(9) 예수님이 마태에게 하신 말씀이면서, 동시에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나를 따르라.” 물리적으로 따라오라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주님의 제자로 부르시는 초청입니다. 주님을 믿으라, 주님을 사랑하라,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라, 이 모두를 합하여 나를 따르라. 세리 마태가 즉시로 응답하여 주님을 따릅니다. 제자는 주저하는 사람이 아니라 일어서는 사람입니다. 우물쭈물하는 사람이 아니라 결단하여 따르는 사람이 진정 제자입니다.
나는 주님을 따르고 있습니까, 주저하지 않고 주님을 따라 나섰습니까?
죄인들아, 나를 따르라(10-13) 아무나 주님을 따를 수는 없습니다. 누가 주님을 따를 수 있을까요? 자기가 죄인인 줄 아는 사람입니다. 병자가 자기 병을 모르면 의사를 찾을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죄인이 자기 죄를 모르면 주님을 찾지 않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스스로 의인인 줄 알았으므로 예수님을 따를 수 없었습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죄인과 의인? 아닙니다. 자신이 죄인인 줄 아는 복 있는 죄인과, 그걸 모르는 안타까운 죄인이 있을 뿐입니다.
병자에게 의사가 필요하듯, 죄인인 나에게 구원의 주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습니까?
새 부대들아, 나를 따르라(14-17) 계율에 골몰하다가 자칫 주님을 놓칠 수 있습니다. 계명과 계율은 우리를 주님께로 인도하는 다리인데, 그 자체에 얽매이면 주님을 소외시키는 단초가 됩니다. 계명을 위한 계명, 나의 종교적 만족을 위한 금식이 그러합니다. 주님을 향한 열정으로서의 금식이어야 하고, 주님과 사귐으로서의 계명이어야 합니다. 낡은 부대는 계명을 지키는 자신에게 집중하지만, 새 부대는 주님을 사모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계명과 계율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열심히 교회를 섬기지만, 정작 교회의 주인이신 주님이 소외되는 일은 없습니까?



• 가난한 죄인의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따르게 하소서
• [정충호, 박은정 선교사(M국)] 현지인들의 믿음이 성장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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