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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편지

  • 김미정
  • May 08, 2024
  • 3

아침에 눈을 뜨면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바라던 어제를, 바라던 삶을 살아내지 못했죠. 그래서 다시 맞이한 오늘은 나에게 큰 의미가 없었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오늘은 억지로 떠밀려 받은 곤란하고 쓸모없는 물건과도 같았습니다.

주어진 오늘이 감당하기 힘들어 침대에서 몸이 찌뿌둥할 때까지 버티고 버티다가 겨우 일어났습니다. 습관적으로 폭식을 하고 인터넷 서핑을 하다 보면 졸음이 몰려왔습니다. 하루 종일 하는 것 없이 무기력한 생활을 보낸 것이죠.

 

이렇게 종일 놀고먹고 있으니, 가족들은 일하다 급한 용무가 생기면 무조건 나의 일이 되었습니다. 어디 놀러 다니지도 않고 집에서 가만히 있는 내가 시켜먹기 딱 좋은 심부름꾼이었을 테죠. 은행 업무, 아파트 관련 일, 택배, 식사 준비, 청소, 빨래 등 자잘한 잡일은 모두 내 몫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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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다들 바쁘고 급해서 시키는 거라지만, 대신 처리 해주는 일이 잦아질수록 마음 깊숙한 곳에서 스멀스멀 부아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자기들 일을 너무 나한테만 시키는 거 아니야?'
'내가 항상 집에서 놀고만 있다고 생각하나?''
'어떻게 이렇게 당연하다는 듯이 부려먹지?!'

 

스스로가 한없이 작아지고 초라해 보였습니다. 나를 무시해서 시킨다는 생각까지 들어 기분이 나빠졌죠. 무기력하고 모든 게 귀찮은데 몸을 억지로 움직여야 하니 힘들어서 짜증도 났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를 위해서라도 무기력하게만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무기력하고 우울한 시간들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름 소소하고 가벼운 할 일들을 만들어보기 시작했죠. 일단 아침 루틴을 정하고, 몸의 청결에 신경 쓰고, 더 좋은 음식을 챙겨 먹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기분 내키는 대로 해왔던 일들을 달력에 일일이 써두고 매일 매일 스케줄을 확인했습니다.

 

오늘 딱히 할 일이 없다면 할 일을 만들었습니다. 작은 화분을 만들어 관리하거나, 식물에 물을 주거나, 시장에서 떨이로 파는 과일로 과일청을 만들었죠. 전날 해야 할 일을 미리 생각하고 '해야지' 마음먹었습니다. 그러고 다음 날 정말 그 일을 했다면 그것도 나만의 스케줄로 인정했습니다. 내가 한 소소한 일들을 하나의 스케줄로 인정하고 뿌듯해하는 것이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살아갈 내일'을 계획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대견한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스케줄을 짤 때 썼던 할 일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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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상에서 소소하게 할 수 있는 일

* 셀프 인테리어하고 청소하기
* 가족들과 다 같이 먹을 반찬 만들기(가족들에게 생색 좀 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
* 오늘 쓴 돈 기록하기, 소비를 줄이도록 어떤 물품을 덜 사도될지 고민하기
* 산책하기

2) 어렵진 않지만 배우고 싶은 것들 배워보기

* 단기 수업이나 원데이 클래스 듣기(커피 만들기, 자세 교정, 드로잉 수업, 창업 세미나 등)
* 문화센터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수업 등록하기(프랑스 자수, 요가, 줌바 댄스 등)
* 유튜브 보며 기초 영어 공부하기.

3) 집에서 아날로그 취미로 마음의 여유 찾기

* 좋은 책 필사하며 글씨 예쁘게 쓰는 연습하기 (벌렁거리는 마음이 조금 진정되는 일)
* 유튜브로 프랑스 자수 배우기.

 

한 달 동안 주기적으로 나가야 하는 스케줄을 1~2개 정도 잡고, 하루 정도 짧게 나갔다 오는 이벤트성 스케줄도 2~4개 정도 잡았습니다. 소소한 일거리는 미리 달력에 적지 않고 자기 전에 생각만 하고 하나하나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을 덜 느끼게 했습니다. 실제로 일을 수행하면 그때서야 달력에 기록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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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날 밤에 내일 해야 할 일들을 떠올리고 자면, 다음 날 일어나서 멍하니 누워 있을 때 느꼈던 공허함이 사라졌습니다. 아침 루틴을 마치고서도 이어서 해야 하는 일이 또 있으니 오늘 하루가 의미있게 느껴졌죠. 스트레스 받지 않으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로만 짜여진 스케줄을 온전히 즐기게 된 셈입니다. 하루를 잘 짜는 것만으로도 나를 위한 하루를 만들어 나가는 것 같아서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하나의 숙제를 마감한 뿌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무기력한 날을 보내고 있다면, 기지개를 한번 펴고, 소소한 계획을 적어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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