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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편지

  • 김미정
  • Oct 26, 2023
  • 8

저녁을 준비하고, 먹고, 뒷정리를 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몇 시간 동안의 몰입을 필요로 합니다. 저녁을 먹은 직후 나른해져 소파에 몸을 던지고 싶을 때 무작정 쉬어버리면 부지불식간에 그 자세로 자정을 넘기게 되고, 다음 날 저녁까지 음식물 찌꺼기 냄새를 맡으면서 일을 해야 하는 난감한 처지가 되곤 합니다.
그래서 다른 식구들이 저녁을 먹고 소파로 직행할 때 나는 주방으로 갑니다. 그렇게 한참을 서서 물일을 하고 빠근해진 허리와 다리를 쉬고 싶어 거실로 향하는데, 그럴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거실 풍경은 나를 멈칫하게 합니다.

 

기역 자로 생긴 카우치 소파에 남편과 딸이 생긴 그대로 기역 자로 누워 있습니다. 본래 사인용으로 나온 소파를 두 사람이 쓰고 있는데도 내가 앉을 자리가 없는 것입니다. 텔레비전이나 태블릿 pC 등에 정신을 팔고 있는 그들은 앞에서 서성이는 내 존재를 의식하지 못합니다. 내가 앉을 자리를 염두에 두지 않은 그들의 자세는 너무나 빈틈이 없어 보여서, 비켜 달라 해도 편히 앉을 만한 자리가 날 것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일과를 마친 가족과 한 공간을 공유하고 싶은데 그 공간은 이미 만석. 잠깐이지만 그 순간 나는 몹시 외로워집니다. 어쩐지 세상 어디에도 내 자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듭니다.

 

얼마 전까지 외로움 앞에서 내 대처 방식은 졸렬했습니다. 또 다른 집안일을 찾아 하릴없이 배회하는 집 안의 방랑자가 되거나, 침실로 들어가 버리거나. 내 기분을 말하기는 싫지만 조금은 눈치 채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렇지만 이제까지의 내 경험대로, 말하지 않는 것을 알아채는 가족이란 흔치 않으며 내 가족은 흔한 부류였습니다. 더구나 내가 느끼는 기분이란 말해도 알아먹을 턱이 없는 미묘한 것이었죠.

 

그러다 하루는 집안일을 끝낸 후 몸이 너무나 피곤했습니다. 당장 소파의 안락함이 필요했고, 그날 나는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기역 자로 누운 그들 사이에 몸을 던지고 퍼져 앉어 버렸습니다. 순간 양쪽 에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내 엉덩이에 다리나 머리가 깔린 가족들은 이내 몸을 움직이고 다리를 접으며 내가 앉을 자리를 만들어냈습니다. 내가 끼어들 틈이 없다고 생각했던 공간에 실은 자리가 있었던 것이죠. 가족들과 살을 맞대고 자리다툼을 하며 난 어느덧 그들과 함께 시시덕거리고 있었습니다.
결혼을 해도, 가족들이 있어도 외롭다는 것은 많은 사람이 공감하기를 거부하는 진실인데요. 결혼해 산다는 것은 외롭지 않다는 게 아니라 외로움에 대처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는 매일의 저녁 식사 후 느끼는 외로움에 대처하는 법을 찾아냈습니다. 소외되었다고 연민에 빠지지 않고 그들의 품속으로 일단 뛰어드는 것입니다. 이해나 공감이라는 어려운 과정이 없더라도 살을 부비고 같은 공기를 숨 쉬는 과정에서 말로는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연대감이 생깁니다. 그게 어쩌면 근본적인 외로움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굳이 가족을 만드는 이유가 되기도 하는 것이겠죠.

 

그날 이후로 나는 우아한 자기연민이나 자존심 따위 내려놓고 그냥 비키라고 윽박지르거나 깔고 앉아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요즘에는 더 좋은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안락의자 하나를 더 장만한 것입니다. 이제 저녁 일과를 마치고 자연스럽게 내 의자로 가 먼저 쉬고 있는 가족들 옆에 앉습니다. 여전히 종종 외롭지만 이내 극복합니다. 집안에 내 자리가 없다면 조금 뻔뻔하지만 의연하게 대처해보는 것은 어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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