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편지
언제 죽을지 모르니 미리 정리하자
나는 언제 죽을까?
알 수 없다
나에게 허락된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
그것도 잘 모른다.
죽음은 항상 예고 없이 불현듯 찾아온다.
100세 인생이라고는 하지만 100세를 다 채우지 못하고 떠나는 이들도 많다.
젊은 나이에 갑자기 불의의 사고로 떠나게 되는 경우들도 있다.
오늘 문득
20대에 일찍 떠나버린 내 친구가 생각이 났다.
한동안, 아주아주 오랫동안 그 친구를 잠시 잊고 지냈다.
벌써 한참의 세월이 흐른 사건인데
왜 갑자기 오늘, 문득 그 친구의 이름과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그 친구가 떠날 때쯤이 지금 이 시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정신 차려보니
내가 미친 듯이 집안 곳곳을 정리하고 있었다.
나는 그리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다.
일도 한꺼번에 몰아서 하는 타입이라 들춰보니 곳곳에 묵은 먼지들이 많이 보였다.
내가 갑자기 이 세상을 예고 없이 떠나게 되었을 때
남겨진 사람이 내 물건을 정리해야 한다면?
상상만 해도 아찔해졌다.
왜 갑자기 청승맞게 “죽음” 타령이냐고?
인생은 항상 예측하기 어려운 법이니까
미리미리 삶을 정리 정돈해놓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먼저 정리한 부분은 바로 옷이다.
나는 운동선수도 아닌데 운동할 때 입는 레깅스가 이렇게나 많은 것일까?
다 끄집어내어 보니 “내가 참 욕심 많게 살았구나~” 하고 반성이 되었다.
너무 오래되어 낡고 너덜너덜해진 운동복은 과감히 버리고
내가 손이 자주 가고, 앞으로도 챙겨서 입을 것 같은 운동복만 남겨두고
과감히 싹 다 정리했다.
이렇게 정리해 놓고 나니 안심이 되고 홀가분하다.
여기 남아 있는 레깅스만 돌아가며 입어도
할머니 될 때까지 입고도 남겠는걸? 이런 생각에 혼자 피식 웃음이 났다.
이젠 더이상 운동복을 사지 말고, 집에 있는 것을 잘 챙겨서 입자. 라고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정리한 것이 바로 양말이다.
양말은 또 왜 이렇게 많은 것인가?
집에 충분히 신을 양말이 넘쳐나는데, 어디 가다가 예쁜 양말을 보면 또 사고, 또 사고 그랬던
내 모습이 반성이 되었다.
이미 구멍 나고 낡아서 자주 신지도 않는 양말인데 버리기 아깝다고 쟁여 놓고 있는 양말만 해도 한 짐이었다. 가지고 있으면 뭐 하나 싶다.
어차피 신지 않을 것이면 과감히 정리하는 것이 맞다.
지금까지 2~3년 안 신었으면 앞으로도 안신을 것이 뻔하다.
내가 신었던 양말을 남주기도 애매하다.
앞으로 내가 신을 양말들만 깨끗하게 정리하기로 마음먹으니 그동안 오랜 세월 껴안고 있었던 각종 양말들을 과감히 정리할 수 있었다.
부질없는 양말 욕심. 다 내려놓고, 담백하게 앞으로 신을 양말들만 딱 모아놓으니 양말 상자의 여백이 내 마음을 훨씬 편안하게 해 준다.
그다음은 싱크대 밑 프라이팬 코너.
오래되고 코팅 벗겨져서 자주 쓰지도 않는 프라이팬을 보물단지 감추듯 왜 보관하고 있었을까?
안 쓸 것이면 과감히 정리하는 게 맞다.라는 생각이 들어 내가 자주 쓰는 프라이팬들만 남겨놓고
싹 정리해 놓고 나니 싱크대 속이 여유롭고 여유공간이 주는 편안함이 참 좋게 느껴졌다.
혹시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될지라도 나의 주방을 보고 그 누구도 고생스럽지 않기를 바라며 말끔하게 정리했다.
마지막으로 나의 소박한 그릇장.
누군가에게 자랑할 만큼 이렇다 할 비싼 그릇 하나 없지만
모두 나에게는 하나하나 추억이 서리고, 의미가 있는 그릇들이다.
이 정도면
어느 날 내가 갑자기 사라져도
남겨진 가족이 필요한 그릇들을 잘 찾아서 식사를 할 수 있겠지?
나도 결혼하기 전에는 참 미니멀라이프를 좋아하던 사람이었는데
[살림]이라는 걸 하다 보니 자꾸만 하나 둘, 짐이 늘어나게 되고,
제때 정리를 안 해두면 물건들이 어느새 내 삶을 지배해 버리게 된다.
오늘은 문득 먼저 떠나가버린 나의 친구 “곽미선” . 그 아이가 갑자기 떠올라
“나도 언제 예고 없이 가게 될지 알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내 주변의 삶을 정리하게 되었는데,
이런 정리정돈의 시간이 나에겐 고요한 명상의 시간과도 같았다.
흐트러졌던 그동안의 나의 삶을 돌아보면서
지금 현재 나의 삶을 다시 한번 점검하게 되고,
마음가짐을 다시 정갈하게 갖게 되는 계기가 된다.
어쩌면 우리 모두 다
죽음이 나하고는 아주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지금 당장 어디 아픈데 없고, 내 육체가 건강하다면 그런 생각은 더욱 강할 것이다.
그래도 한 번쯤은 내 인생의 유한함을 상기시키고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난 다음에 내 물건을 정리하거나 치워하는 사람의 노고를 생각해 본다면
평소에 아주 조금씩이라도 쓸데없는 물건들을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마지막으로
책상 정리까지 싹 끝내놓고 나니
오늘의 나는 굉장히 큰 일을 잘 해낸 것 같은 뿌듯함이 밀려온다.
그래,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죽음을
미리미리 준비하자.
준비하는 이 마음이 참 좋다.
삶에 대한 마음가짐이 한결 더 경건해지고, 진중해지는 느낌이 든다.
거창하게 죽음을 준비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잘은 몰라도
내 물건과 내가 머무는 내 공간만이라도
깨끗하고 단정하게라도 유지해 두기로 하자.
내가 언제 갑자기 떠나더라도 나의 뒷사람이 나 때문에 덜 힘들도록.
유용하진 않지만 소중한 것들.
내 주변을 정리정돈하는 마음.
내 삶을 진지하게 돌아보는 시간이 된다.
by. 바유 https://brunch.co.kr/@vayuvayu/53
(이 글은 크리에이터 바유 작가님께서 행복한가에 기부해주신 소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