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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편지

  • 김미정
  • Nov 26, 2021
  • 15

바닥에 대하여
                                           정호승

바닥까지 가본 사람들은 말한다
결국 바닥은 보이지 않는다고
바닥은 보이지 않지만
그냥 바닥까지 걸어가는 것이라고
바닥까지 걸어가야만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바닥을 딛고
굳세게 일어선 사람들도 말한다
더 이상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다고
발이 닿지 않아도
그냥 바닥을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바닥의 바닥까지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도 말한다
더 이상 바닥은 없다고
바닥은 없기 때문에 있는 것이라고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라고
그냥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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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까지 간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살면서 결코 겪지 말아야 할 고통에
빠졌다는 뜻이라면 왜 굳이 ‘바닥’까지
간다는 표현을 쓰는 걸까?
최악의 상황, 최악의 절망에 이르게 된 것이라면
그 ‘최악’이라는 말의 뜻은 무엇인가?
그것이 인생 최악의 순간임은 무엇을 기준으로 말하는 것인가?
지금의 상황이 너무도 가혹하고 견뎌낼 수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 이상의 고통이 없다고
어찌 장담할 수 있는가.
시인은 왜 ‘바닥의 바닥’이라는
언어논리의 오류를 저지르고 있는가?
바닥이 끝이라면 어떻게 그 바닥의 바닥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인가.
이런저런 상념 끝에 ‘바닥’이란 표현은
그저 버티기 힘든 고통과 시련의 순간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바닥의 바닥’이란 겨우 벗어났다고
생각했던 절망의 늪에 다시 빠지고
말았다는 뜻의 에두른 표현일 것이다.

시인은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렇겠지.
그 고통의 길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것이니까.
그저 겪을 만큼 겪어야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니까.
그래야만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니까.
그 바닥은 결코 발에 닿지 않는 것이겠지.
그저 허공에 발버둥 치다가 벗어나는 것이지.
그 순간 바닥을 치고 일어섰다고 믿는 것이겠지.
가장 깊은 바닥까지 갔다가 돌아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바닥이 없다고 말한다.
고통의 심연은 끝이 없으니 존재하지도 보이지도 않는 것이다.
그저 애써 다시 솟아올라 돌아온 것이니까.

선문답 같은 ‘바닥’ 이야기를 몇 번이고 생각하다가
마음을 스친 한 가지 생각이 있다.
‘인생에 바닥은 없다. 그저 어려움에 부딪혀
자신이 바닥까지 갔다고 생각할 뿐이다.
없는 것이니 보이지도 않지만 있다고
생각하니 벗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 바닥까지 갔다는 생각에 고통 받고 있습니까?
어디까지가 바닥일지 알 수 없이 끝없이 추락하고 있습니까?
바닥은 없습니다. 발에 닿을 것을 기대하지 말고
지금이 바닥이라고 생각하고 솟아오르세요.
다리에 힘을 주고 허공을 날아오르세요.
있지도 않은 바닥을 기다리지 마세요.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있다.’라고 하지 않습니까.

-최용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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