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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편지

  • 김미정
  • Nov 17, 2021
  • 11

부부 사이도 간이 잘 맞는 감처럼

부부 사이도 간이 잘 맞는 감처럼

                                                                  -장미

올해 우리 감나무는 꽃도 보여주지 않았다.
당연하다. 해마다 감만 거둬 먹고 몇 해 동안
아무것도 먹이지 않은 결과다.
엊그제 남편이 감나무 주변을 둘레둘레 파고
고토석회 한 포를 뿌렸다.
내년엔 효과가 나타나리라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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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화단에서 주민들이 힘들여 따 나눠준
대봉감이 베란다에 아직 몇 개 남아 있지만
단감은 사다 먹는 중이다.
이런 내 사정을 아시는지 올해도 안사돈께서
단감을 한 박스 보내셨다.
마트표 단감에 비해 1.5배는 커 보인다.
마트표 단감은 4 등분해서 먹었으나
안사돈께서 보내신 단감은 8등분으로 잘라 맛을 봤다.
맛나다. 내 입에 딱이다.
한 조각을 날름 하고 다시 한 조각을 집어 들었다.

"감은 어떻게 이렇게 간이 잘 맞지? "
"간?"
"으응, 간. 다른 과일들도 그렇지만 감은 특히 질리지가 않아."
"그러니까 자연인가?"
"그렇지, 그러니까 자연이겠지.
자연스러운 쓴신짠단 맛 외에 감칠맛에
맛난 맛까지 적량이 정말 잘 배합되어 있다니까."

감을 받고 안사돈께 전화를 드렸다.
언제나 밝고 맑은 안사돈의 목소리다.
감이 엄청 크다는 말에 기분이 좋으신가 보다.
태국 정부에서 11월부터 백신 접종 완료자에 한해
무격리 입국을 허용하기로 했다시며 환한 웃음소리를 보내신다.
태국에서 사업을 하시는 바깥사돈께서
12월쯤 입국하신다는 반가운 말씀도 함께 들려주신다.

바깥사돈께서는 며칠 한국에 머무르시며
국내 일을 보시고 안사돈과 함께
태국으로 다시 나가실 예정이시란다.
안사돈께서는 작년 봄에 태국에서 귀국하셔서
코로나 때문에 1년 반을 국내에 발이 묶여 계시다.
추위를 많이 타시니 이번에 출국하시면
내년 봄까지는 태국에 머무르실 듯하다.

내가 사돈댁 소식을 전하자 남편이 반색을 한다.
"우린 매일 얼굴 보면서 티격태격하는 재미로 사는데
사돈 내외는 1년 반을 얼굴도 못 보고 지내셨네.
축하드릴 일이지. 바깥사돈 귀국하시면
어떻게든 시간 내서 식사 한 끼 대접해 드려야겠네."

어느 부부인들 떨어져 지내는 일이
애틋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만 목소리만 들으면서
올 수도 갈 수도 없는 상황을 견디는 일이야말로
말로는 다 표현하기 힘들 듯하다.

문득 오래전 길거리에서 당사주를 볼 때 들었던 말이 떠오른다.
"이 부부는 신랑 신부가 한동안 떨어져 지내면 좋을 텐데."

그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나는 부부가 떨어져 지내면
큰일 나는 줄 알던 젊은 시절이었다.
살면서 주변을 돌아보니 떨어져 지내는
부부들이 의외로 참 많았다.
평일엔 떨어져 지내다 주말이면 만나는
주말부부에서부터 한 사람은 국내에
다른 한 사람은 국외에 있어 몇 해씩 만나지 못하는
부부까지 여러 형태의 부부가 있었다.

하긴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도 서울과 지방에서
1년여를 따로 지냈던 적이 있었다.

일터를 찾아 서울로 떠난 아버지께 나는 자주 편지를 썼다.
아버지께서 생활비를 부쳐 주셨을 때는 물론이고
평소에도 할머니와 어머니의 주문을 받아 편지를 쓰곤 했다.

우리 집안의 장녀에다 아버지에게
편지 쓰기에는 가장 적합하고 유일한 사람이 나였다.
할머니는 글씨를 아예 모르셨고
어머니는 더듬더듬 읽던 한글마저도
오래 사용하지 않으니
거의 잊혀서 편지를 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런데다 바로 아래 남동생은 초등학교
2학년이었으니 형제자매들 중
그래도 아버지께 편지를 쓸 수 있는
가장 적당한 대상자로 내가 선택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버님 전 상서’로 시작되었던 초등학교 5학년
딸아이의 편지를 받고 아버지는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당시의 어머니를 생각하면 당신 자신을
어떤 식으로도 남편에게 표현할 수 없었던
한 여자의 50 초반이 안쓰럽고 안타깝게 확대되어 온다.
나는 단어장을 만들어 들고 다니며 외운 영어 단어도
오래 사용하지 않으니 지금은 거의 잊어버렸다.
어머니는 야학에서 몇 개월 배운 한글을
잊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을 것이다.
그러나 그 또한 세월의 힘에 바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의 침묵이란 하고 싶은 말의 다른 표현에 다름 아니었다.
당시엔 어머니의 마음 상태 같은 건
전혀 마음 밖에 있었다는 점이
지금 다시 되짚어볼수록 죄송하다.
어머니와 나를 한 여성으로
놓고 볼 수 있게 된 지금에서야 말이다.

둘째 딸 내외도 지금은 주말부부다.
딸과 사위는 국내에 있으니 주중에라도
일이 있으면 언제든 만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내 눈엔 젊은 부부가 주말부부로
지내는 일이 늘 애틋하다.
어쩌면 내가 길에서 보았던 당사주의 내용처럼
둘째 내외도 한동안 따로 지내는 것이 앞날을 위해
더 좋을 수 있나 보다고 생각하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떫고 싱거웠던 감은 해와 달과 별과 바람과
비를 맞으며 달고 야무진 맛을 갖게 된다.
같은 이치로 부부 또한 부부라는 이름 안에
내포된 온갖 것들과 씨름하며 오래 지내다 보면
간이 잘 맞는 감처럼 자연스러운 맛을 내게 되는 것은 아닐까.

매일 함께 지내는 부부는 물론 주말부부도
한 해 한 번 칠석날 하룻밤에만 만날 수 있는
견우직녀까지도 부부라는 이름의
멋진 공통분모를 갖고 있는 이유다.

신께서 내게 우리 부부를 두고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고 주문하는 대로 들려주시겠다고
하신다면 아뢰고 싶은 말이 있다.
"너희 부부 정말 간이 잘 맞게 사는구나.
내 마음에 딱이다."

신의 말씀을 듣기만 하면 죄송할 것이기에
리액션으로 한 마디 또 올려드려야 한다.

"그러게 인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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