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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편지

  • 김미정
  • Nov 10, 2021
  • 17

45살에 결혼해서 안타까운 딱 한가지

나는 딱히 비혼주의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결혼을 꼭 해야겠다는 마음도 없었다.
나에게 결혼은 몹시나도 신성한 행위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반드시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어릴 적부터
확고히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세상일이 내 맘대로 되지 않듯이 결혼도 그랬다.
어쩌면 인생에서 내 반쪽을 만난다는 게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내 맘대로 안 되는 일이 아닐까?

그래서 포기했다.
사주에서는 45살에 결혼하면 좋다고
그때 즈음에 할 거라고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믿음은 점점 사라져 갔고
내 맘에서도 어느 정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그래, 이렇게 혼자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아.
오히려 맞지도 않는 사람 만나서 괴로워하고
시간 낭비할 바에야 내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친구들과 맛난 거 먹고 좋은데 다니면서 즐겁게 사는 게 더 낫지.'

이렇게 나는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열심히
일하고 공부했고 휴가 때에는 내가 좋아하는
여행을 하면서 나름 의미 있는 삶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쿠바를 갔고 그곳에서 쿠바를 떠나기
34시간 전에 한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때는 그게 운명인지도 몰랐다.
남들이 말하는 후광도 보이지 않았고
종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에게 말을 거는 그 남자 얼굴도 제대로 보지 않았으니.
그 남자를 만나기 전날 우연히 안 좋은 일을
겪게 되었고 그 일로 인해서 두 번 다시 쿠바
여행은 하지 않을 거라 마음을 먹은 터여서
낯선 쿠바 남자의 호의가 전혀 반갑지 않았다.
게다가 쿠바는 국민들의 대부분이 가난한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던가! 그런 곳에서 남자를
만나고 그 남자와 미래를 함께 한다는 건
나의 계획에 눈곱만큼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나는 운명이라는 걸 믿지만 그 운명이라는 게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데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내 인생이 이렇게 한순간에 바뀌어 버리다니!

결국 나는 머리가 아닌 가슴의 소리에 따랐고 그 남자와 결혼했다.
내 나이 45살에. 그리고 우리는 쿠바에서 알콩달콩 살았다.

결혼하기 전 남편이 한국에 왔고 그때부터
함께 살았기 때문에 신혼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냥 살았다.
20여 년을 혼자 살다가 국적도, 성격도,
환경도 다르고 나이도 (몹시) 차이가 나는
남자랑 사는 게 이렇게 재미있을 줄은 몰랐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는 힘든 상황이
많았지만 우리 마음만은 힘들지 않았다.
그 남자랑 있으면 나는 늘 든든했다.
하늘이 무너져도 나를 지켜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함께 살아보니 그리고 힘든 상황에 놓여있어 보니,
그 남자와 결혼한 게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선택 중 하나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남자는 지금까지 내가 본 남자 중에 가장 마음이
따뜻하고, 심성이 고우며, 말도 예쁘게 하고,
꽃으로도 때리지 않고, 무엇보다 나만을 사랑하고
아껴주는 참 가정적인 남자였다. 물론 책임감 있고
성실하기도 하나, 그건 쿠바인으로서 해당하는
사항이고 성실과 책임감은 한국인을 따라가긴 힘들 것 같다.

우리 둘이 있으면 항상 깔깔깔 웃음이 나왔고, 이야기가 끝이 없었다.
게다가 둘 다 긍정적인 성격이라 웬만큼 힘든 것도 함께 잘 극복해 내었다.
밤이면 동네 공원에 있는 고양이들에게
사람들도 (없어서) 먹기 힘든 참치랑 햄을 주어
그 동네에 살 때 한동안 남편은 고양이들에게 인기 만점이기도 했다.
어느 날 길을 걷다가 남편이 갑자기 어디론가
가길래 어디 가지? 라며 돌아보니,
도로를 건너고 있는 한 시각장애인을 조심스레 도와주고 있었다.
어떤 날에는 슈퍼마켓에서 한 할아버지가
잔돈이 모자라서 계산을 마무리 못하고 있자
남편이 주머니에서 돈은 꺼내어 대신 내어주기도 했다.
아주 적은 금액이지만 나는 남편의 그런 따뜻한 마음이 좋았다.

잔머리가 잘 굴러가서 돈을 버는 데 능숙하지는 못했지만 괜찮았다.
잔머리가 잘 굴러가서 다른 사람의 뒤통수를
치고 결국은 내 뒤통수까지 칠 수도 있는 것보다
우직하고 정직한 게 나는 더 좋았다.

이런 남자랑 살던 어느 날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이 남자를 닮은 아이가 있으면 참 좋겠다!

늦은 나이에 결혼을 했고, 결혼을 할지 말지도
몰랐기 때문에 나는 이번 생에는 아이가 없다고
단정을 지으며 남의 아이만 예뻐했었다.
그랬던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자 스스로도 놀라고 말았다.
한 남자를 사랑하면 그 남자를 닮은 아이를
가지고 싶다더니 정말이구나,라고 생각을 하며
지금이라도 가져볼까? 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아니라는 마음이 들었다.
여러모로 너무 힘들거라는 그림이 그려졌기 때문이었다.

남편도 나도 아이들을 아주 좋아한다.
특히 남편은 핸드볼 선수를 하다가 시합 중에
손가락을 다쳐서 그만두고는 핸드볼 코치를
했는데, 그 대상이 다름 아닌 초등학생들이었다.
남편은 학생들을 아주 아끼고 사랑했다.
학교에서 유니폼과 공을 사줄 돈이 없자,
자신의 사비를 털어서(학부형들의 도움을 받아)
대회에 출전을 시킬 정도로 그들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그리고 그들은 두 번이나 챔피언이 되었다.
남편은 계속 아이들의 코치를 하고 싶어
했지만 월급이 너무 적어 먹고사는 문제에
봉착하게 되자 5년 동안 했던 아이들의
핸드볼 코치를 그만두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어 한다.

쿠바에서 그중 한 학생과 엄마를 만난 적이 있었다.
남편과 지금도 친하게 지내는 친구라
우리 집에 초대해서 한국 음식을 해 준 적이
있었는데 초등학생이던 그 학생은 지금은
너무 예쁜 숙녀가 되어 있었다.
(아직 고등학생이지만) 그리고 그녀와
그녀의 언니도 역시나 한국 아이돌을 몹시 좋아했다.
그런 남편이기에 남편도 아이가 있으면
좋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나의 건강이라고 하였다.
내가 힘든 건 싫다고 했다.

쿠바 아주머니들은 나와 남편을 보면 늘 같은 질문을 한다.

"애는 있어?"
"아니오 없어요."
"그럼 빨리 애부터 낳아야지.
둘이 닮은 애가 있으면 너무 예쁘겠다. 얼른 애 가져."

내가 동양인이라서 그들보다 동안이라
내 나이를 모르고 하는 말이려니 했는데
나이를 알고도 딱히 그 맘이 변함은 없었다.

"내 친척은 나이가 마흔셋(만 나이)인데
얼마 전에 애를 놨잖아. 그러니까 너도 가능해."

그래, 세상에 불가능한 건 없지.
모든 건 가능해,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저 나는 그런 말에 웃을 뿐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말레꼰 기차를 탔는데 너무
똘망똘망하고 귀여운 한 남자아이를 보았다.
그 아이의 모습에서 어릴 적 남편이 보이는 듯했다.
남편처럼 착하고 귀여운 아이면 키워볼 수도 있겠는데..
라는 생각을 하게 한 아이였다.
너무 귀여워서 사진도 여러 장을 찍었더랬다.

남편도 나도 아이를 좋아하고 가지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우리는 결국 둘이 잘 사는 걸로 합의를 보았다.
내가 너무 노산이기도 하고 우리의 상황뿐만
아니라 세상의 상황도 그랬다. 그래서 아이에
대한 생각은 말끔히 접었다.
그냥 남편을 큰 아들이라고 생각하면서
살기로 했다.(남편이 귀엽다는 뜻이다)

만약 내가 서른 살에 이 남자를 만났으면 어땠을까?
그러면 이 남자랑 결혼을 했을까?

아마도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

45살에 결혼한 걸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참 잘했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저 가끔 이 생각이
드는 건 내가 가슴을 가진 사람이어서겠지.
그래서 남편과 나는 이 세상에 소외받은
어린이들에게 좀 더 마음을 주기로 했다.
언젠가는 이러한 우리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나의 안타까움을 달래 본다.

- 쿠바댁 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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