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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뎀나무] 내 자녀 잘하는것 아시나요
[로뎀나무] 내 자녀 잘하는것 아시나요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를 향해 보내시는 주님의 메시지를 보면 일곱 교회 모두에 주시는 공통적 표현이 있다. “내가 알고”라는 표현이다.
에베소 교회를 향한 편지에서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계 2:2)라고 말씀하신 주님께서 서머나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도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2:9)라는 표현을 쓰신다. 나머지 교회 모두에도 똑같은 말씀을 반복하신다. 교회의 주인 되신 예수님께서 교회와 성도들을 정확하게 알고 계심을 강조하는 것이다.
왜 이것을 그렇게 강조하시는가? 예수님께서는 지금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와 성도들을 평가하고 계신다. 그런데 그 평가가 한 치 오차도 없이 정확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대목이다.
부모 된 우리도 끊임없이 자녀들을 평가한다. 예수님께서 일곱 교회에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때로는 책망하고 때로는 칭찬한다. 그런데 자녀를 향한 그 칭찬이나 책망이 과연 정확한 판단과 평가를 전제로 한 것인지에 대한 점검이 있었는가?
구약에 보면 꿈의 사람 요셉이 등장한다. 그는 어릴 때부터 자기가 꾼 꿈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들려주곤 했던 것 같다. 창세기 37장에서도 형들에게 자기가 꾼 꿈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6∼7절) 그것도 모자라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9절)
그런데 그것이 형들에게 결정적인 미움을 사는 결과가 되었다. 사실 이런 황당한 꿈 이야기를 좋아할 형제들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그야말로 대책 없이 철 없는 아이로 낙인찍히는 순간이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필자가 주목하는 구절이 있다. 바로 11절이다. “그 형들은 시기하되 그 아비는 그 말을 마음에 두었더라.”
놀랍지 않은가? 이것이 부모가 해야 할 결정적인 역할이다. 모두가 다 대책 없는 아이라고 꾸짖고 나무란다 하더라도 부모만은 그 아이 속에 감추어져 있는 잠재력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착하고 공부 잘하는 것도 중요하다. 모든 사람이 다 칭찬하는 아이로 자라는 것도 귀한 일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자녀라 할지라도 부모는 ‘주목해 두어야 할’ 자녀의 강점을 발견하는 눈이 있어야 한다.
가정의 달 5월을 지내면서 나는 어떤 부모인지 곰곰이 생각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이찬수 목사(분당우리교회)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를 향해 보내시는 주님의 메시지를 보면 일곱 교회 모두에 주시는 공통적 표현이 있다. “내가 알고”라는 표현이다.
에베소 교회를 향한 편지에서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계 2:2)라고 말씀하신 주님께서 서머나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도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2:9)라는 표현을 쓰신다. 나머지 교회 모두에도 똑같은 말씀을 반복하신다. 교회의 주인 되신 예수님께서 교회와 성도들을 정확하게 알고 계심을 강조하는 것이다.
왜 이것을 그렇게 강조하시는가? 예수님께서는 지금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와 성도들을 평가하고 계신다. 그런데 그 평가가 한 치 오차도 없이 정확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대목이다.
부모 된 우리도 끊임없이 자녀들을 평가한다. 예수님께서 일곱 교회에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때로는 책망하고 때로는 칭찬한다. 그런데 자녀를 향한 그 칭찬이나 책망이 과연 정확한 판단과 평가를 전제로 한 것인지에 대한 점검이 있었는가?
구약에 보면 꿈의 사람 요셉이 등장한다. 그는 어릴 때부터 자기가 꾼 꿈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들려주곤 했던 것 같다. 창세기 37장에서도 형들에게 자기가 꾼 꿈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6∼7절) 그것도 모자라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9절)
그런데 그것이 형들에게 결정적인 미움을 사는 결과가 되었다. 사실 이런 황당한 꿈 이야기를 좋아할 형제들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그야말로 대책 없이 철 없는 아이로 낙인찍히는 순간이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필자가 주목하는 구절이 있다. 바로 11절이다. “그 형들은 시기하되 그 아비는 그 말을 마음에 두었더라.”
놀랍지 않은가? 이것이 부모가 해야 할 결정적인 역할이다. 모두가 다 대책 없는 아이라고 꾸짖고 나무란다 하더라도 부모만은 그 아이 속에 감추어져 있는 잠재력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착하고 공부 잘하는 것도 중요하다. 모든 사람이 다 칭찬하는 아이로 자라는 것도 귀한 일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자녀라 할지라도 부모는 ‘주목해 두어야 할’ 자녀의 강점을 발견하는 눈이 있어야 한다.
가정의 달 5월을 지내면서 나는 어떤 부모인지 곰곰이 생각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이찬수 목사(분당우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