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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뎀나무] 슬픔을 다루는 지혜
[로뎀나무] 슬픔을 다루는 지혜
슬픔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다. 슬픔처럼 슬픈 것은 없다. 슬픔은 아픈 것이다. 기쁨을 나누긴 쉬워도 슬픔을 나누긴 어렵다. 그래서 슬픔은 외로운 것이다. 슬픔은 혼자 짊어지고 가야 하는 짐과 같다. 그래서 슬픔이 힘겨운 것이다. 슬픔이 그토록 눈물겨운 것이다.
슬픔은 반갑지 않은 손님처럼 다가온다. 그래도 손님이기에 잘 모셔야 한다. 조심스러운 물건처럼 슬픔을 잘 다루어야 한다. 슬픔은 잘못 다루면 한이 되고 독이 된다. 우리 인생에 너무 깊은 상처를 남긴다. 그러나 슬픔을 잘 다루면 슬픔이 우리에게 귀한 것들을 선물해 준다. 마치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와 머물다 떠날 때 기대하지 않았던 귀한 선물을 주고 떠나는 것과 같다.
슬픔을 아는 사람은 슬픔의 맛을 아는 사람이다. 단것만 맛있는 것이 아니다. 쓴것도 맛이 있다. 씀바귀 나물의 맛은 쓴맛이다. 담백한 맛이다. 쓴맛은 과도한 단맛 때문에 상실해 버린 입맛을 돋워주는 특효약이다. 그래서 반찬 중에 반찬은 쓴맛을 내는 반찬이다.
인생의 맛을 돋워주는 것은 즐거움만이 아니다. 때로 찾아오는 슬픔이 인생의 맛을 돋운다. 슬픔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슬픔을 피할 수 있는 사람 또한 없다. 밀물과 썰물처럼 우리 인생은 기쁨과 슬픔의 교차로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피할 수 없이 찾아오는 슬픔을 잘 다룰 줄 안다. 우리 인생은 슬픔을 잘 다룸으로써 더욱 깊은 맛을 낸다.
판소리의 대가 주광덕 선생은 “기쁨보다 슬픔을 담은 소리가 달다”고 했다. 슬픔을 담은 소리를 내기 위해 소리의 대가들은 슬픔을 터뜨리지 않는다고 한다. 슬픔을 담기 위해 슬픔을 터뜨리지 않는 절제가 슬픔을 담은 단 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슬픔을 담은 소리가 달게 느껴지는 것은 슬픔을 담은 소리가 슬픈 마음을 치유하기 때문이다. 슬픔은 마음을 달래주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슬픔을 담은 단 노래를 부르셨다. “하나님이여,하나님이여,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는 외침은 슬픔을 담은 단 노래였다. 예수님은 슬픔의 노래를 부르심으로써 슬픔 중에 있는 사람을 치유하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마음이 슬플 때마다 예수님을 찾아간다.
강준민 (LA동양선교교회 목사)
슬픔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다. 슬픔처럼 슬픈 것은 없다. 슬픔은 아픈 것이다. 기쁨을 나누긴 쉬워도 슬픔을 나누긴 어렵다. 그래서 슬픔은 외로운 것이다. 슬픔은 혼자 짊어지고 가야 하는 짐과 같다. 그래서 슬픔이 힘겨운 것이다. 슬픔이 그토록 눈물겨운 것이다.
슬픔은 반갑지 않은 손님처럼 다가온다. 그래도 손님이기에 잘 모셔야 한다. 조심스러운 물건처럼 슬픔을 잘 다루어야 한다. 슬픔은 잘못 다루면 한이 되고 독이 된다. 우리 인생에 너무 깊은 상처를 남긴다. 그러나 슬픔을 잘 다루면 슬픔이 우리에게 귀한 것들을 선물해 준다. 마치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와 머물다 떠날 때 기대하지 않았던 귀한 선물을 주고 떠나는 것과 같다.
슬픔을 아는 사람은 슬픔의 맛을 아는 사람이다. 단것만 맛있는 것이 아니다. 쓴것도 맛이 있다. 씀바귀 나물의 맛은 쓴맛이다. 담백한 맛이다. 쓴맛은 과도한 단맛 때문에 상실해 버린 입맛을 돋워주는 특효약이다. 그래서 반찬 중에 반찬은 쓴맛을 내는 반찬이다.
인생의 맛을 돋워주는 것은 즐거움만이 아니다. 때로 찾아오는 슬픔이 인생의 맛을 돋운다. 슬픔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슬픔을 피할 수 있는 사람 또한 없다. 밀물과 썰물처럼 우리 인생은 기쁨과 슬픔의 교차로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피할 수 없이 찾아오는 슬픔을 잘 다룰 줄 안다. 우리 인생은 슬픔을 잘 다룸으로써 더욱 깊은 맛을 낸다.
판소리의 대가 주광덕 선생은 “기쁨보다 슬픔을 담은 소리가 달다”고 했다. 슬픔을 담은 소리를 내기 위해 소리의 대가들은 슬픔을 터뜨리지 않는다고 한다. 슬픔을 담기 위해 슬픔을 터뜨리지 않는 절제가 슬픔을 담은 단 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슬픔을 담은 소리가 달게 느껴지는 것은 슬픔을 담은 소리가 슬픈 마음을 치유하기 때문이다. 슬픔은 마음을 달래주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슬픔을 담은 단 노래를 부르셨다. “하나님이여,하나님이여,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는 외침은 슬픔을 담은 단 노래였다. 예수님은 슬픔의 노래를 부르심으로써 슬픔 중에 있는 사람을 치유하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마음이 슬플 때마다 예수님을 찾아간다.
강준민 (LA동양선교교회 목사)
그리고 울어보세요
또 물어보세요 왜? 우냐고
나에게 질문을 받은 나는 뭐라고 할 말이 없습니다.
그게 그렇게 슬프냐고 반문해 보세요
이것보다 더한 슬픔에도 담담했던 나였는데?!!!
허허~ 이쯤이야 하고 털어버려 보세요
나에겐 주님이 계신데 왜 슬픔에 젖어있나요!!
가슴에 가만히 담아둔 슬픔은 서서히 사라집니다.
후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