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세상만사―김상길] 양화진에서 찾은 사순절
[세상만사―김상길] 양화진에서 찾은 사순절
현재 기독교는 사순절(四旬節) 기간을 보내고 있다. 사순절은 신자들이 40일 동안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고 그 고난의 의미를 인생에 적용하는 절기다. 지난 3월 1일에 시작된 사순절은 4월 16일 부활 주일 전까지 이어진다. 경건과 절제,희생과 나눔,성찰과 회복이 사순절의 진정한 의미다.
나로부터 시작되는 사순절의 의미 회복은 공동체의 변화에 영향을 준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은 영원한 진리다. 이 진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전에 증거되었다.
사순절 기간에 신자들이 꼭 가야 할 곳이 있다. 서울 합정동에 위치한 양화진(陽花津) 외국인 묘지다. 그 곳에는 17개국 출신 외국인 575기의 묘가 있다. 부활 주일 우리나라에 처음 복음을 들고 온 언더우드,아펜젤러를 비롯해 헤이그에 가서 일제의 만행을 고발한 헐버트,평양의 의료선교사 홀,양반과 천민의 신분제도 철폐를 주장한 무어 등 조선을 개화시키는데 ‘한 알의 밀’처럼 헌신한 분들이 묻혀 있다. 외국인 묘지에서 우리를 더욱 숙연하게 하는 것은 묘비에 새겨진 최후의 증언들이다. 이 고백들은 그 어떤 웅변보다 더 큰 힘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자신을 주셨다.” 양화진에 최초로 묻힌 헤론의 묘비명이다. 미국 선교사였던 헤론은 1885년 조선을 찾은 후 광혜원에서 환자들을 치료했다. 그는 의료 선교뿐 아니라 성경 번역에도 헌신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몸을 돌봤으나 정작 자신의 몸은 돌보지 못하고 조선에 온 지 5년 만에 겹친 피로와 이질을 극복하지 못한 채 고귀한 생을 마쳤다. 34세의 젊은 나이였다. 그는 자신을 조선에 주었다.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히기보다 한국에 묻히기를 원하노라.” 황성 기독교청년회(YMCA) 초대 회장이었던 헐버트 묘비명이다. 미국 선교사인 그는 1886년 ‘고통받는 땅’에 와서 문서선교,민족운동에 헌신했다. 그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온 몸으로 실천한 사명자였다. 그래서 일제의 탄압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독립 밀사의 역할을 자청한 것이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습니다.” 언더우드와 아펜젤러의 묘비명이다. 그들은 젊음을 조선에 바쳤다. 인종과 국가를 초월한 진정한 사랑의 실천이었다. 모국에서 얼마든지 안락하게 보낼 수 있었지만 찬송가 355장에 나오는 “부름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는 가사처럼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라 조선을 기쁘게 섬긴 것이다.
양화진을 방문한 사람들이 가장 감동을 받는 묘비명은 미국 의료 선교사 켄드릭의 유언이다. 간호사인 켄드릭은 1908년 26세의 꽃다운 나이에 숨을 거뒀다. 조선에 온 지 8개월 만이었다. 그러나 선교의 열정과 비전,가난한 이들을 사랑한 그녀의 헌신은 인간이 정한 세월을 뛰어넘었다. 그녀는 소천하기 전 자신을 파송한 선교회에 “만일 내가 죽으면 텍사스 청년회원들에게 열씩,스물씩,쉰씩 아침 저녁으로 조선에 오라고 전해 주세요”라고 편지했다. 그녀의 묘비에는 “나에게 천 번의 생명이 있다 해도 나는 그 모두를 조선을 위해 바치리라”고 쓰여 있다.
이 세상에서 희생이라는 말보다 아름다운 말이 있을까. 사랑도 희생을 바탕으로 한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다. 기독교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절기는 부활절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이 있기 전 십자가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요즘 이 사회의 문제와 비극은 이기주의와 탐욕에서 비롯된다. 사회병리 현상의 중심에 나만 잘 먹고 잘살면 된다는 의식이 자리잡고 있다. 이런 때 양화진의 묘비명은 현대인들에게 진정으로 아름다운 삶,가치 있고 행복한 삶이 무엇이지 증언하고 있다. 양화진에서 사순절의 의미를 찾아 보자. 사순절은 새로운 삶의 기회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한복음 15:13·젠센 선교사 묘비명)
김상길 논설위원 skkim@kmib.co.kr
현재 기독교는 사순절(四旬節) 기간을 보내고 있다. 사순절은 신자들이 40일 동안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고 그 고난의 의미를 인생에 적용하는 절기다. 지난 3월 1일에 시작된 사순절은 4월 16일 부활 주일 전까지 이어진다. 경건과 절제,희생과 나눔,성찰과 회복이 사순절의 진정한 의미다.
나로부터 시작되는 사순절의 의미 회복은 공동체의 변화에 영향을 준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은 영원한 진리다. 이 진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전에 증거되었다.
사순절 기간에 신자들이 꼭 가야 할 곳이 있다. 서울 합정동에 위치한 양화진(陽花津) 외국인 묘지다. 그 곳에는 17개국 출신 외국인 575기의 묘가 있다. 부활 주일 우리나라에 처음 복음을 들고 온 언더우드,아펜젤러를 비롯해 헤이그에 가서 일제의 만행을 고발한 헐버트,평양의 의료선교사 홀,양반과 천민의 신분제도 철폐를 주장한 무어 등 조선을 개화시키는데 ‘한 알의 밀’처럼 헌신한 분들이 묻혀 있다. 외국인 묘지에서 우리를 더욱 숙연하게 하는 것은 묘비에 새겨진 최후의 증언들이다. 이 고백들은 그 어떤 웅변보다 더 큰 힘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자신을 주셨다.” 양화진에 최초로 묻힌 헤론의 묘비명이다. 미국 선교사였던 헤론은 1885년 조선을 찾은 후 광혜원에서 환자들을 치료했다. 그는 의료 선교뿐 아니라 성경 번역에도 헌신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몸을 돌봤으나 정작 자신의 몸은 돌보지 못하고 조선에 온 지 5년 만에 겹친 피로와 이질을 극복하지 못한 채 고귀한 생을 마쳤다. 34세의 젊은 나이였다. 그는 자신을 조선에 주었다.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히기보다 한국에 묻히기를 원하노라.” 황성 기독교청년회(YMCA) 초대 회장이었던 헐버트 묘비명이다. 미국 선교사인 그는 1886년 ‘고통받는 땅’에 와서 문서선교,민족운동에 헌신했다. 그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온 몸으로 실천한 사명자였다. 그래서 일제의 탄압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독립 밀사의 역할을 자청한 것이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습니다.” 언더우드와 아펜젤러의 묘비명이다. 그들은 젊음을 조선에 바쳤다. 인종과 국가를 초월한 진정한 사랑의 실천이었다. 모국에서 얼마든지 안락하게 보낼 수 있었지만 찬송가 355장에 나오는 “부름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는 가사처럼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라 조선을 기쁘게 섬긴 것이다.
양화진을 방문한 사람들이 가장 감동을 받는 묘비명은 미국 의료 선교사 켄드릭의 유언이다. 간호사인 켄드릭은 1908년 26세의 꽃다운 나이에 숨을 거뒀다. 조선에 온 지 8개월 만이었다. 그러나 선교의 열정과 비전,가난한 이들을 사랑한 그녀의 헌신은 인간이 정한 세월을 뛰어넘었다. 그녀는 소천하기 전 자신을 파송한 선교회에 “만일 내가 죽으면 텍사스 청년회원들에게 열씩,스물씩,쉰씩 아침 저녁으로 조선에 오라고 전해 주세요”라고 편지했다. 그녀의 묘비에는 “나에게 천 번의 생명이 있다 해도 나는 그 모두를 조선을 위해 바치리라”고 쓰여 있다.
이 세상에서 희생이라는 말보다 아름다운 말이 있을까. 사랑도 희생을 바탕으로 한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다. 기독교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절기는 부활절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이 있기 전 십자가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요즘 이 사회의 문제와 비극은 이기주의와 탐욕에서 비롯된다. 사회병리 현상의 중심에 나만 잘 먹고 잘살면 된다는 의식이 자리잡고 있다. 이런 때 양화진의 묘비명은 현대인들에게 진정으로 아름다운 삶,가치 있고 행복한 삶이 무엇이지 증언하고 있다. 양화진에서 사순절의 의미를 찾아 보자. 사순절은 새로운 삶의 기회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한복음 15:13·젠센 선교사 묘비명)
김상길 논설위원 skkim@kmib.co.kr
부끄럽습니다. 밀알의 의미를 되새겨 보면서 나 자신이 과연 밀알이 되어 죽을 수 있는가? 를 생각합니다.
주님! 한 알의 밀처럼 제 자신이 죽어서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