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방
2014년 7월 29일(화) 다시 찾은 아들에 대한 기쁨
새찬송가 515장
1 눈을 들어 하늘 보라 어지러운 세상 중에 곳곳마다 상한 영의 탄식 소리 들려온다 빛을 잃은 많은 사람 길을 잃고
헤매이며 탕자처럼 기진하니 믿는 자여 어이할꼬 2 눈을 들어 하늘 보라 어두워진 세상 중에 외치는 자 많건마는 생명수는 말랐어라 죄를 대속하신
주님 선한 일꾼 찾으시나 대답할 이 어디 있나 믿는 자여 어이할꼬 3 눈을 들어 하늘 보라 살아계신 주 하나님 약한 자를 부르시어 하늘 뜻을
전하셨다 생명수는 홀로 예수 처음이요 나중이라 주님 너를 부르신다 믿는 자여 어이할꼬 4 눈을 들어 하늘 보라 다시 사신 그리스도 만백성을
사랑하사 오래 참고 기다리네 인애하신 우리 구주 의의 심판 하시는 날 곧 가까이 임하는데 믿는 자여 어이할꼬
11 또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12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13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14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15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6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25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26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27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28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29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30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 묵상을 돕는 질문
삼위 하나님은 어떤 분이고,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합니까?
ㅍ단어해설
분깃(12절) 신명기 21:17에 따르면 장자는 상속물의 2/3를, 차자는 1/3을 받도록 되어 있다.
두 아들 중의 하나(11-24) 앞의 두 이야기에는 잃은 양이나 드라크마를 찾는 사람의 간절히 찾는 모습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 속에서도 아버지는 아들을 간절히 찾고 있습니다. 비록 아버지가 아들을 찾아 먼 나라까지 다니지는 않지만, 아들이 돌아오기를 바라며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 기다림이 있었기에 아들이 돌아올 때 먼 거리인데도 아들을 알아보고 달려 나가 측은히 여겨 끌어안으며 입을 맞춥니다. 자칫 이 이야기는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로 그려지기 쉽지만, 실상은 잃어버린 아들을 찾은 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비록 아들이 아버지에게 지은 죄가 있지만, 그것보다 이 아버지에게 더 중요한 사실은 잃었던 아들을 다시 되찾은 일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나의 생각과 나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기뻐함이 마땅하다(25-32) 돌아온 아들을 두고 아버지는 크게 기뻐하지만, 그 기쁨을 함께 나누지 못하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탕자의 형입니다. 그는 동생을 가리켜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30절)이라고 차갑게 멸시하며 비판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열심히 수고한 일을 보상해주지 않는다고 아버지에게 분을 표합니다. 그의 말이 다 맞는 말이지만, 그에게는 없는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곧 아버지가 가진 그 사랑과 긍휼의 마음입니다. 이 맏아들의 모습은 세리와 죄인들을 두고 수군거리며 비판하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모습(15:1-2)입니다. 반면 예수님에게는 회개하고 돌아오는 죄인들을 기뻐하는 깊은 사랑과 긍휼의 마음이 있습니다.
나의 마음이 사랑과 긍휼 대신 비판으로 가득 차 있다면 어떻게 그것을 고칠 수 있을까요?
•김주만, 이경화 선교사가 섬기는 멜라루앙 교회 건축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잘 이루어지게 하소서
2. 나아가 그러한 은혜를 받은 우리가 첫째 아들처럼 하나님 아버지의 잔치에 참여하기를 거부하는 행동에 대해서 주의해야 함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첫째 아들은 효자처럼 열심히 아버지의 일을 도왔습니다. 하지만 비유의 결론에서는 첫째 아들은 효를 행하는 것이 아니라 불효를 행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께 모욕적인 말을 담으며 반항하고 있고, 무엇보다 잔치에 참여하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에서 잔치는 "하나님 나라"를 의미하는 것을 생각할 때, 이 첫째 아들은 자신안에 있는 시기심과 분노를 억제하지 못해 그 은혜를 걷어찬 어리석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는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것이지만, 우리도 교회 공동체 내에 새로운 가족들이 등록할 때 마치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는 식의 경계를 하거나, 혹은 수준 미달이라 생각하여 천하게 대하는 모든 행동이 없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녀들이 그 사랑안에서, 그 사랑을 서로에게 전하는 사랑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내겐 첫째 아들과 같은 교만함이 없는지'를 돌아보고, 나와 우리 교회 공동체가 하나님 아버지의 기쁨에 함께 참예하는 사랑공동체가 되기 위한 노력은 무엇인지 집중하면 그 은혜가 클 것입니다.
3. 종합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한 없는 사랑을 받은 성도들입니다. 하나님은 이제 그 사랑으로 모인 당신의 자녀들이 당신의 사랑으로 기쁨의 교제를 나누기 원하십니다. 특별히 영혼구원을 최우선의 사명으로 삼고, 이를 위해 노력하며, 나아가 하나님께서 그에 대한 열매로서 새가족을 보내주실 때에 하나님과 같은 기쁨의 마음으로 그들을 영접하고 섬기며 사랑해야 합니다. 이러한 은혜와 사랑이 충만한 교회 공동체로 우리 수정교회가 세워지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