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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뎀나무] 신뢰회복 위한 3가지
[로뎀나무] 신뢰회복 위한 3가지
일본 경제가 한참 동안 불경기를 겪던 때가 있었다. 그때 일본 경제 추락의 근본 원인을 3가지로 분석해 놓은 칼럼이 있었다. 그 내용을 옮겨 놓으면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일본은 그동안 너무 배타적이었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세계사에 큰 족적을 남긴 나라는 모두 개방하고 포용하는 나라들이었다. 로마제국이나 당나라, 그리고 영국과 미국이 그 좋은 사례이다. 반면, 청나라나 조선, 나치독일 등 외국에 배타적인 나라는 모두 망했다.
둘째, 일본은 베푸는 데 인색했다는 것이다. 일본은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이 되고 나서도 베푸는 존재로의 모습보다는 ‘받아 챙기는’ 존재로 더 각인돼 있다. 베트남의 ‘보트 피플’을 한 사람도 받아들이지 않았고, 또 그렇게 부자이면서도 실리에 철저하고 절대 손해 안보는 깍쟁이 이미지를 가진 나라이다.
셋째, 일본은 미래를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과거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같은 패전국이면서도 독일은 철저히 과거를 반성하며 정리했고, 그랬기 때문에 주변국과도 화평할 수 있었다. 이에 반해 일본은 아직도 역사 문제로 주변 국가들과 마찰 중이다.
그 칼럼은 이상에서 언급한 세 가지 이유를 일본 경제 추락의 근본원인으로 분석하고 있었다.
그 글을 읽으면서 필자는, 일본이 받고 있는 질책이 우리나라 기독교계가 받고 있는 질책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복음의 문이 막혀간다고 아우성인 지금이야말로 그 원인을 분석하고 반성해야 할 때가 아니겠는가.
첫째로, 우리 기독교도 배타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물론 예수만을 통해 구원을 얻는다는 진리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런 핵심적인 교리 부분은 예외로 두고, 전반적으로 포용력이 부족하고 쉽게 이웃을 정죄하는 좁은 마음은 없는지 돌아봐야 한다.
둘째로, 이웃을 섬기는 일에 인색하다. 불신자들이 보기에 교회는 커지고 부유해지는 것 같은데 여전히 이웃을 돌보고 섬기는 일에는 인색하다는 것이다.
셋째로, 교회가 미래지향적이지 못하다는 지적도 많다. 일본처럼 청산해야 할 과거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하다 보니 거듭난 이후에도 옛사람의 모습을 버리지 못한다.
앞에서 살펴본 몇 가지 연약한 모습이 교정되고 미래와 본질을 향한 이런 가슴 벅찬 선언이 있을 때, 한국 교회에 대한 신뢰는 회복되리라 믿는다.
이찬수 목사(분당우리교회)
일본 경제가 한참 동안 불경기를 겪던 때가 있었다. 그때 일본 경제 추락의 근본 원인을 3가지로 분석해 놓은 칼럼이 있었다. 그 내용을 옮겨 놓으면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일본은 그동안 너무 배타적이었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세계사에 큰 족적을 남긴 나라는 모두 개방하고 포용하는 나라들이었다. 로마제국이나 당나라, 그리고 영국과 미국이 그 좋은 사례이다. 반면, 청나라나 조선, 나치독일 등 외국에 배타적인 나라는 모두 망했다.
둘째, 일본은 베푸는 데 인색했다는 것이다. 일본은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이 되고 나서도 베푸는 존재로의 모습보다는 ‘받아 챙기는’ 존재로 더 각인돼 있다. 베트남의 ‘보트 피플’을 한 사람도 받아들이지 않았고, 또 그렇게 부자이면서도 실리에 철저하고 절대 손해 안보는 깍쟁이 이미지를 가진 나라이다.
셋째, 일본은 미래를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과거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같은 패전국이면서도 독일은 철저히 과거를 반성하며 정리했고, 그랬기 때문에 주변국과도 화평할 수 있었다. 이에 반해 일본은 아직도 역사 문제로 주변 국가들과 마찰 중이다.
그 칼럼은 이상에서 언급한 세 가지 이유를 일본 경제 추락의 근본원인으로 분석하고 있었다.
그 글을 읽으면서 필자는, 일본이 받고 있는 질책이 우리나라 기독교계가 받고 있는 질책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복음의 문이 막혀간다고 아우성인 지금이야말로 그 원인을 분석하고 반성해야 할 때가 아니겠는가.
첫째로, 우리 기독교도 배타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물론 예수만을 통해 구원을 얻는다는 진리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런 핵심적인 교리 부분은 예외로 두고, 전반적으로 포용력이 부족하고 쉽게 이웃을 정죄하는 좁은 마음은 없는지 돌아봐야 한다.
둘째로, 이웃을 섬기는 일에 인색하다. 불신자들이 보기에 교회는 커지고 부유해지는 것 같은데 여전히 이웃을 돌보고 섬기는 일에는 인색하다는 것이다.
셋째로, 교회가 미래지향적이지 못하다는 지적도 많다. 일본처럼 청산해야 할 과거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하다 보니 거듭난 이후에도 옛사람의 모습을 버리지 못한다.
앞에서 살펴본 몇 가지 연약한 모습이 교정되고 미래와 본질을 향한 이런 가슴 벅찬 선언이 있을 때, 한국 교회에 대한 신뢰는 회복되리라 믿는다.
이찬수 목사(분당우리교회)